몽골여행/몽골 광관지

간단사원

02산소 2008. 3. 2. 18:18

위치 : 울란바타르시 바양골구

간단사는 울란바타르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원래 울란바타르의 이름은이흐 후레라고 했었다. 이 뜻은 큰 울타리라는 것으로 바로 간단사의 담장을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자 명명된 것이다.

원래 17세기 제1대 보그드 왕 잔바자르(G. Zanbazar)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시기는 분명치 않다. 원래 수도인 하라호름이 청()에 의하여 폐허가 돼 현재 울란바타르로 천도(遷都)를 하여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옮겨졌다. 이에 따라 간단사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하여 큰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의 지배 이후 라마교가 국교(國敎)가 되면서 함께 발전한 간단사는 교육, 의료, 문화의 중심지가 되며 국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간단사는 원래 울란바타르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제5대 보그드 왕 때인 1838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사원 이전 후 100여 년에 걸쳐 간단사는 아홉 개의 사원과 도서관 그리고 5,000 승려의 숙소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다. 간단사는 몽골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 국가에서 중요한 배움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1938년에 사회주의자들이 몽골 종교계를 억압했다. 800여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일부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피살·추방당했고 군에 편성되거나 속화(俗化)되었다. 다섯 개의 사원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고, 나머지는 러시아 관료들이나 그들 소유의 말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944년 잔존 승려 아홉 명의 탄원(歎願)이 받아들여진 결과 정부는 훨씬 축소된 규모로 간단사를 다시 열 것을 허용했으나 종교 행사는 여전히 금지했다. 그 후 수십 년 간 간단사의 승려들은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부처의 가르침의 명맥을 잇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1980
년대 초반에 간단사는 종교 활동을 허가 받은 최고령 150명의 승려들로 사원(寺院)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으며 일부 승려들은 티벳 불교의 교육과 수행을 위해 인도로 보내졌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몽골에서는 평화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고문(顧問)이 철수했으며 몽골은 다시 독립을 획득했다. 종교계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사원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숨겨진 보물들이 사원에 다시 등장했다. 불교가 다시 성행하게 됨에 따라 간단사는 불교부흥(佛敎復興)을 위한 야심적인 프로그램에 착수하게 되었다. 젊은 승려들이 모집되는 등의 노력의 결과로 불교 단체 수가 300을 헤아리게 되었다. 오늘날 승려들의 삼분의 일은 사회주의 전 세대이며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25세 이하이다.
이러한 변혁에도 불구하고 gelong이라 일컬어지는 젊은 승려들의 서원을 위한 교육 전반을 담당하는 숙련된 승려들의 수는 절실하게 부족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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